"도플갱어를 만나는것을 상상해본 적 있어? 나는 도플갱어가 내 발치에 앉아서 내 무릎에 얼굴을 얹고 나를 웃으며 바라보는 상상을 해."
서희 안녕. R이야.
생일 축하해. 행복한 하루 되었길 바라. --은 내팽겨치더라도 서희 생일은 진짜 절대 그냥 넘어갈수 없어서 졸린 눈을 부여잡고 편지를 쓰고 있어. 지금은 파리 오를리 공항 호텔이야. 내일 아침애 프라하로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파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어. 지금 이 곳은 새벽 한 시를 지나고 있어.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벼운 만남을 가벼이 떠나보내면서 한국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내가 가진 무겁고 소중하고 단단한 인간관계들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돼. 그들이 내 곁에 있어주는 것이 내가 다른 곳에서 마음을 다쳐도 비빌 언덕이 있고, 저 멀리 날아가버리지 않고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전에도 알았지만 더욱 통감하게 돼. 그리고 내가 가진 소중한 무게 안에서도 서희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또 말하고 싶었어. 우리는 어쩜 이렇게 다르고 또 똑같은지. 수많은 전생 속에서 우리는 언젠가 쌍둥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도플갱어를 만나는것을 상상해본 적 있어? 나는 언제나 내 도플갱어를 떠올릴 때 도플갱어가 내 발치에 앉아서 내 무릎에 얼굴을 얹고 나를 웃으며 바라보는 상상을 해. 나와 똑같은 얼굴은 끔찍하게 사랑스러워. 하지만 동시에 웃는 얼굴의 목을 조르고 싶지. 왠지 그것이 그를 위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와 같은 얼굴은 나와 같은 고통을 감각한다고 생각하면 아득해져. 하지만 서희는 나와 다른 얼굴을 가져서, 그것이 때로 나의 위안이 돼. 네가하는 말과 생각을 들을 때마다 존경스럽고, 정말로 많이 배우고, 때론 질투를 하기도 하지. 그것이 좋은 친우의 조건인 것 같아. 질투하고 동시에 몹시 사랑하면서 배우는 것.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관계에 다양한 레이어를 쌓아두는 것. 그리고 그것을 서로 인정할 수 있는 관계는 정말이지 흔치 않지. 나는 네가 내 인생에 있어주어 고마워. 그리고 나는 아침 비행기를 놓쳤어. 40분 전에 도착했는데 체크인을 마감했대. 하하.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며 편지를 이어쓰고 있어. 파리는 무척 흐려. 나는 이제 이놈의 유럽 놈들이 지겨워졌어. 한국 말 최고. 떡볶이 최고… 생일은 어떻게 보냈어? 내 생일에는 서희가 함께 해주었는데, 나는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해. 아니심지어 지금 한국은 12시가 넘었네… 미안해. 하지만 여기는 아직 서희의 생일이니까 한 번만 봐주라(ㅠㅠ) 일단 빨리 보내야겠다. 생일 축하하고, 사랑해! 서울에서 만나자.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