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편지야말로 친밀함 없는 관계를 위한 글의 형식인 거야."
서희에게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간혹 인스타 스토리나 피드를 들려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의 교류를 했을 뿐이니 이런 질문이 떠올랐어. 친밀함 없는 편지는 어떤 의미를 품을 수 있을까? 조금 뜬금없지만 편지의 주제인 '내가 감각하는 서희에 대하여'와 관련되어 있는 질문이라고 느껴. 우리는 어색하다고 할 것도 없고 떠올릴 것도 없는 그야말로 친밀하지 않은 사이니까 말이야. 여하간 질문으로 돌아가서, 잠시 편지라는 단어를 사전에 검색해 봤어 편지는 '안부, 소식, 용무 따위를 적어 보내는 글'이라고 하네. 그런데 친밀함 없는 관계 속에서 안부, 소식, 용무를 전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네이버 사전엔 이 뜻이 전부라고 나와있어. 친밀함이 없다면 편지도 없다고 여기는 셈인 거지. 그러니 내 멋대로 우리의 편지를 위해 편지의 정의를 바꿔볼게. 나는 편지란 기약 없는 시간성과 답신을 예측할 수 없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써내는 하나의 활동이라고 생각해. 문자나 DM은 반드시 정해져있는 상대가 어서 답변을 해주기를 기다리게 돼. 그게 편지가 소멸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겠지만 어쨌든 편지는 기약없이 답신을 기다려야 해. 어쩌면 영영 답신은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나의 편지가 제대로 도착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 하지만 편지를 쓰는 사람은 기꺼이 그걸 수용해야 하는 거지. 물론 내가 쓰고 있는 이 편지는 디지털 세계 안이고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한 것이 아닌 이상 100% 확률로 서희에게 도착할 것 같아. 하지만 나는 이 편지가 답신이라고 생각해. 왜냐면 서희가 먼저 편지를 나에게 보냈거든. 요나스 메카스와 백남준의 편지에 감화되어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달라고 한 제안 자체가 편지인 거야. 언제, 누구에게 답신을 받을지 모르는 가능성을 남겨뒀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내가 정의한 편지에 가까운 글이었던 거지. 다시 '친밀함 없는 편지는 무슨 의미를 품을 수 있을까?'로 돌아가 보면 이제는 조금 그 의미를 알 것 같아. 내가 서희와 절친이었다면 나의 갑작스러운 이 편지가 편지가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해. 왜냐면 절친이 쓰는 편지는 문자나 DM처럼 예측 가능한 발신/수신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질문은 잘못됐어. 오히려 편지야말로 친밀함 없는 관계를 위한 글의 형식인 거야. 마지막으로 서희의 안부를 묻거나 나의 소식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건 우리의 편지를 위해서 끝까지 참으려고!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