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을 사는 사람들에게 무척 고마운 감정과 내 치부를 또 들키고 말았구나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
내 기억에 서희와 처음 만난 날은 철학 모임에서 서점을 방문했을 때였어. 서점에서 일하다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잘 구분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에 시선이 꽂혀 있고, 들어서 만져보고, 걸음을 쉽게 못 떼는데,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책을 전혀 보지 않고, 공간을 둘러보며 곧 흥미가 떨어진 얼굴로 제 할 일을 하러 가거든. 서희는 물론 책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반갑게 느껴졌어. 내 책을 샀고, 마침 책의 재고가 없어서 다음에 주기로 했지. 나는 내 책을 사는 사람들에게 무척 고마운 감정과 내 치부를 또 들키고 말았구나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 서희를 전혀 모를 때니 내 소설을 어떻게 읽을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고, 그런 걸 상상하다보면 문득 두려워지기 때문에 얼른 책을 건네주고 두근거리며 혹시 반응이 있을까 기대하기로 했지.
다음은 --의 생일파티였어. --과 어울리는 친구들을 보며 다들 그런 말을 직접 하지 않았지만 단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걸 느꼈어. --이 따뜻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일까. 그래서 그런지 사실 난 좀 그 자리의 이방인 같았고, 집에 빨리 가고 싶기도 했어. 주인공이 있는 자리에는 최대한 기척을 숨겨야한다는 게 내 지론이거든. 사실 그중에서도 서희는 좀 이질적으로 보였는데 그래서인지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어. 생각해보니 그건 내 선입견 같은 거 때문이었고, --과 서희가 친밀해질 이유는 충분하다는 걸 점차 깨달았어. 그건 서희가 저번에 쓴 글에서 나온 넘치는 상태, 거길 넘나들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하는 말이야. 아무튼 나는 내 책에 무심한 척, 기대하지 않는 척 몇 글자를 적어서 건네주고는 도망쳤어. 부디 잘 읽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야. 그 다음은 공주일 거야. 공주에서 회동이 이루어진 건 정말 우연한 것이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공주가 좋다고 바람을 넣은 건 나이기 때문에 우연은 아니지) 서희가 있다고 해서 내심 반갑기도 했어. 앞선 만남들에서의 인상이 좋게 다가왔었나봐. 공주에서도 티가 났을지 안 났을지는 모르겠지만, 공주가 좋다고 잔뜩 떠벌리고 일을 저질러버린 때라 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였는데 서희 포함 모두 좋다는 표현을 많이 해줘서 고마웠어. 공주가 내 것도 아닌데 내 책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랑 비슷했던 거지. 내가 갤러리에서 다소 뜬금없이 글을 적어 준 것도 고맙다는 마음 때문이었어. 먼저 간다고 하니 좋은 것을 두고 혼자가 되는 마음이 허할 것 같기도 했고. 그후에는 서점에서 --를 하고, --을 같이 했지. 서희가 쓴 소설들을 보여주고 메일로 의견도 보내고, 또 모임시간에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 내 소설에 대해 좋은 이야기도 해주었고. 지금 편지를 쓰는 이 시간이 그렇게 어색하지 않은게 이미 몇 차례 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인 것 같아. (내 기준에는 많은 것인데 서희 기준에는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전의 경험보다 서희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고, 거기에 대해 말하고 싶기도 한데 (굳이 하나를 말하자면 서희는 똑똑한데 그걸 휘두르지 않고 품에 안전하게 잘 넣는 사람인 것 같아서 좋다는 거야) 나는 서희를 아직 잘 모른다로 두고 싶어. 그건 내가 단순히 그런 확정성을 잘 못 견디기 때문이야. 예컨대 나한테 끔찍한 기억이 하나 있어. 영화제작사에서 일할 때, 대표한테 시규어 로스 sigur ros가 내한해서 콘서트 간다고 한 적이 있었거든. 대표가 모르는 가수였는지 내게 음악을 좀 들려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대표곡 하나를 재생해서 휴대폰을 건네줬더니 대표가 귀에 대략 10초정도 대고는, 아 월드뮤직이구나 이러더라고. 아무튼 그런 끔찍한 일이 싫다는 소리야. 서희를 모른 채로 앞으로 가늘고 길게 알아가도록 할게. 남은 날이 꽤 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기도 해. (거짓말처럼 둘이 대화를 하는 일은 다신 없었다 같은 결말도 종종 있기 하지만) 갑자기 불확실함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고 싶네. 내가 처음 밤을 새워서 읽은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야. 고등학교 1학년때쯤인가 싶은데 완전히 반한 거지. 지금에야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그러면 푸흡 하는 비웃음을 살 시대기도 하지만 (그래서 하루키를 좋아했단 이야기는 거의 안해. 편지니까 할 수 있게 됐군) 그때 나에겐 굉장한 충격이었어. 그때 마음에 계속 남았던 건 죽는 이유를 말하지 않고 죽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 였어. 사람들은 죽음의 이유를 찾고 싶어하니까 유서를 쓰든 안 쓰든 한 문장으로 귀결되는 걸 찾으려 하지. 하루키는 죽음이 삶으로 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상태이므로 왜 죽는지에 관해 말하지 않는 죽음은 영원히 알 수 없는 미스테리가 된다고 말하는 거야. 그래서 --이 싫어하겠지만 "헤어질 결심"은 하루키의 영향 아래 있다 말하고 싶네. 심지어 하루키가 원작인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에서도 반복되는 이미지이지. 아무튼 그 이미지에서부터 내 삶에 설명할 수 없고 확정할 수 없는 것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대신 소설을 쓰게 된 것 같아.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도 드네. 혹시 하루키가 그렇게 싫지 않거나 한번 읽어도 나쁘지 않겠다 싶으면 "어둠의 저편 After Dark",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두 개 작품을 추천해볼게. 이미 읽어봤다면 그걸 난 좋아한다는 것만 알아줘. (물론 소설을 쓰는 나는 하루키와 결별하려고 노력했어.) 갑작스럽지만 서희에게도 그런 원형같은 이미지나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네. 내 기준은 밤새서 읽은 첫 책이지만 서희만의 다른 기준이 있을 것 같아.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도 궁금하고. 기회가 있다면 그걸 알려주면 좋겠네. 아 그리고 투케를 찾아봤으나 여전히 잘 이해는 안 되었어. 서희가 찾은 투케의 순간이 있다면 다시 알려줘도 좋을 것 같아. 이해해보고 싶어. 나 좋을대로 아무거나 이야기해봤어. 편지에는 제목을 붙이지 않는 법이라고 생각해. 2023년 생일에 적당한 선물이 됐길 바라. 무엇보다 생일 축하해! 건강하길. C